스왈로우 - It : You can (not) advance 음 악 감 상





미결의 시대(의 과업)

5년 전, 조용히 발매된 두 장의 음반이 조용한 충격을 남겼다. 스왈로우 1집과 허클베리핀 3집. 당시 언니네이발관, 마이앤트메리, 3호선 버터플라이 등과 함께, 한국 인디록 1세대 밴드들이 그동안의 부진, 혹은 음악을 한다는 것 자체의 불안감을 어느 정도 떨쳐내고 엇비슷한 시기에 신보를 발매했다. 분명 그들이 노리는 지점은 미묘하게 달랐고, 그 차이가 현재의 상황을 만들었다. 누가 승리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누가 음악적으로 가장 올곧은 선택을 했는지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음악을 계속 할 수 있을 것인지를 '경제적'으로 고민했던 청년들이, 이제는 언제까지 음악을 할 수 있을까를 '음악적'으로 깊게 고민할 시기에 다다랐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한국 인디록 1세대들 중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전까지와는 질적으로 다른 고민을 거쳐 해답을 내놓아야 하는 시기에 이른 것이다.


단절의 시대(의 의미)

2004년에서 불과 5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격변했다. 이전처럼 오버그라운드 뮤지션들의 음악적 수준을 손쉽게 내려보는 것이 불가능해졌고, 일렉트로니카/힙합 등의 장르가 어엿하게 지분을 차지한 형국이다. 그러한 와중에도 여전히 포크/록/메탈과 같은 장르는 비주류에 머무르고 있다. 좀 더 거시적으로 살펴보면, 한국 인디록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록밴드들이 명멸했지만 정말 우리 시대의 '가요'가 될 수 있었던 음악은 없었다고 봐도 될 정도다. (전통적인 의미로써)포크가 자취를 감춘 것도 의미심장하다. 한국록의 단절은 단지 세대교체가 아니라 음악적 뿌리의 단절이며, 그 단절된 지층이 한국 인디록의 역사가 시작된 그 어디엔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허클베리 핀의 이기용이 좀 더 개인적인 프로젝트로 '스왈로우'의 활동을 시작하며 포크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거는 기대는 남달랐다. 그리고 이 기대감은 여느 뮤지션(예를 들어 두 명의 김민규)에게 갖는 기대와는 사뭇 방향이 다르기도 했다. 허클베리 핀 1, 2집에서 보여준 음악적 감수성은 분명 과거와 미래를 잇는 다리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케할 만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스왈로우 3집의 음악은 내 예상에서 그리 벗어나지 않았고, 음악적으로 튼실해졌으며, 그래서 나는 실망했다. 스왈로우 3집에서 느낄 수 있는 매끄러움은, 더 이상 스왈로우라는 이름에서 초기의 날선 떨림을 기대할 수 없게 만든다.


사랑과 꿈의 시대(의 종말)

이것이 그가 선택한 발전이라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납득하기 어렵다. 처음 스왈로우가 음반을 발매할 때만 하더라도 스왈로우와 허클베리 핀으로 분리된 두 이름은 병존할 수 있는 각자의 확고한 영역이 있었다. 하지만 스왈로우 3집에 이르러서는 그 구분이 희미해진다. 허클베리 핀 4집의 '휘파람' 같은 곡은 스왈로우의 음반에 수록되어도 어색하지 않으며, 스왈로우 3집의 '자이언트'나 'Hey You'는 허클베리 핀의 음반에 수록되어도 될 만한 곡이다. 이것은 단지 한 음악인의 음악이 성숙하며 양측이 행복하게 수렴해가는 과정이라 보기 어렵다. 어쩌면 이는 병립할 수 있었던 두 개의 독자적 세계관이 하나로 축소되는 과정일 수 있다. 초기 허클베리 핀의 매운 기세는 4집을 통해 정교한 힘을 얻었다. 하지만 스왈로우의 3집에서는 1집 특유의 음악적/음향적 질감, 느릿하면서도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힘, 내면의 깊이를 표현하고자 자아의 핵심까지 내려가 파고드는 날카로움과 고집을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아마도 2집을 들으며 내심 실망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던 청자라면, 3집에서 매우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스왈로우의 3집은 1집의 노선을 취하기보다, 2집의 노선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1집에서 '세계'와 '나'로 구성된 세계관을 견지했던 스왈로우는 2집에서 사랑을 화두로 꺼내더니('오 나의 사랑은 왜 자꾸만 커가는 걸까'), 3집에서는 음반 전체를 사랑과 추억, 기억을 재료로 곡을 써내려간다. 그리하여 '나'와 '너'의 풍부한 함의는 '사랑'이 끼어들며 그 날선 떨림을 잃고 홀로 남은 이의 감정, 그 소용돌이 속에 빠져든다. 허클베리 핀 4집의 '내달리는 사람들'에서 '너'와 '나'의 결별을 선언하고, 첫 곡인 '밤이 걸어간다'에서 '꿈을 꾸듯 너를 만났'다고 이야기하는, '너'와 '나'의 의미들 - 아득해진 맘 속에서 '그대'는 안녕한지를 묻는 이가 사라지고, '숨이 막힐 듯 보고싶'은 '나', '서러움에 울었'던 '나'의 모습만 남는다.

꿈은 또한 어떠한가. 1집에서 시작된 '오래된 꿈'은 '철거'된 채 생의 오후를 맞이한다. '마지막 꿈이 사라지기 전엔 눈 감지 마라'고 말하던, 젊은 날 손수건처럼 하얀 꿈을 꾸던 이는 더 이상 꿈이 아닌 추억 속에 잠긴다. 꿈꾸지 않는 허클베리 핀, 추억에 사로잡힌 허클베리 핀인 스왈로우의 모습은 낯설 뿐더러 어딘지 불편하다. 마치 술자리에서 갑작스레 옛일을 미화하며 공감할 수 없는 자신만의 추억 속에 잠겨든 친구를 멀뚱히 바라보는 듯하다. 물론 그 모습이 겉으로는 무척 아름다우나, 반 발짝 뒤로 물러나 그 새로 지은 환상을 바라보면, 일순 공허해지는 것이다.


어른의 시대(의 불만)

음악적으로 스왈로우의 3집은 이전의 음반들보다 훨씬 간명하게 핵심을 드러내면서도 그 핵심의 표현을 풍부한 편곡으로 살려낸다. 이러한 특징은 허클베리 핀의 4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허클베리 핀 1집의 '풀'과 허클베리 핀 4집의 '밤이 걸어간다'를 비교해보라) 위에서 투정처럼 적어놓은 불만들이 공감가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분명 내가 꼽은 불만족한 부위들을 원숙한 작편곡 솜씨로 메운데 있을 것이다. 이전까지의 찌를 듯 매서운 바이올린과 묵직한 첼로가 물러난 자리에 신스, 키보드, 멜로디카의 소리가 전면으로 나와 스왈로우 3집이 담는 감성을 잘 표현해내고 있다. 보컬이자 악기인 루네의 목소리도 그가 연주하는 새 악기들의 소리와 잘 어우러진다.

하지만 이 '변화'를 '발전'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기용이 솔로 프로젝트로 스왈로우를 시작하며 얻은 것은 팝이요, 잃은 것은 민요다. '당당'하게 '불을 지르는 아이'가, '나는 고요하다'고 담담히 이야기한다. 10년에 걸쳐 세상과 불협화음을 아프게 그려내며 꿈을 지키던 아이가 내면의 그늘 속에 너무 깊게 빠져들어 결국 어른이 되고 만 듯하다. 팝의 영역에 근접하여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음을 조화롭게 직조하는 포크록('두 사람', '자이언트')과, 포근한 소음과 기타가 상념을 흐릿하면서 아름답게 자아내는 모던한 포크('It', '하루'), 이 두 가지 음악 속에서 이기용 개인의 색채는 점점 옅어진다. 미친 태양처럼 독하게 노란 빛을 내던 스왈로우 1집의 특징들은 무던한 포크록의 편성으로 빛을 잃은 채 안개 속에 숨어있다.


새로운 사랑과 꿈의 시대(의 바람)

허클베리핀의 5집이 나와야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스왈로우 3집이 단지 10년의 험난한 노정을 이어온 음악가의 쉼표였다면 나는 이 작업을 긍정할 수도 있다. 사람이 매번 독기를 품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개인 프로젝트라면 더더욱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3집 이후의 스왈로우가 걱정스러운 것은, 이 프로젝트가 더 이상 개인의 독자적 작업으로 남지 않고 밴드화되면서 겪는 변화로 인해, 초기에 보여주었던 감성을 더 이상 발견하지 못하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허클베리 핀 3집에서 찾을 수 없었던 감성을 스왈로우 1집에서 발견하여, 세간의 평과는 달리 허클베리 핀보다 스왈로우를 지지했던 나로서는, 그 이후의 역전된 상황에 대해 무척 불만스러운 것이다.

앞으로 스왈로우와 허클베리 핀이 어떤 음악을 들고 나올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그가 무채색처럼 'love is all around'라고 되뇌는 것보다 '우리는 불안한 우리는 겁쟁이'라고 토로하는 것을 보고 싶다. 그렇게 드러낸 초라함을 딛고 나오는 '사랑'과 '꿈'을 보고 싶다. 나의 무례한 바람이다.







스왈로우-자이언트

 

 

 

 

스왈로우-두사람

 

 

 

 

스왈로우 - It

 

 

 

 

스왈로우 -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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