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덕은 생각하지 마 짧 은 생 각

+추가 2014.0601.1615

나는 내 의견이 전적으로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정치공학적으로는 내 생각대로 움직이는 게 유리하다고 생각하고, 도덕적으로는 많은 사람이 공감하기 어려울 거라는 걸 나도 잘 안다. 그럼에도 이 문제가 진영을 막론하고 '보수'적인 방식으로 이슈화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반감이 있다. 
나는 교육의 주체가 아이들 자신이 되어야만 잘못된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믿는다. 교육감, 교육자, 교육시스템의 눈높이가 부모들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는 지금의 시스템으로는 아무리 개혁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다. 교육이 '가족'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점에서 고 캔디 씨의 글은 진보와 보수 양쪽을 '가족'으로 회귀하도록 만드는 이슈였고, '가족'을 가치의 중심으로 다시금 올려두게 만들었으며, 이는 내 기준에서 퇴보라고 생각한다.


만약 캔디 고 씨가

"나는 아버지의 교육법이나 교육 철학에 반대하며, 그렇게 키우지 않은 어머니에게 감사하다. 아버지 없이 큰 것이 서러울 때가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아버지의 교육법에 따라 성장하지 않았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한다. 나는 아버지의 교육철학에 동의하지 않고 그것이 한국의 교육을 망친다고 생각하기에 그에 대해 반대한다. 어머니도 나도 그러한 아버지의 교육 철학에 반대했기에 한국을 떠난 것이다. 더 이상 우리 가족과 같은 선택을 하는 사람이 없도록, 서울 시민들이 바른 선택을 해주었으면 한다."

라고 글을 썼다면, 나는 그를 독립된 개인이자 성인으로 인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캔디 씨의 글에는 교육에 대한 자신의 의견도, 교육감으로서 고승덕이 어떠한 점에서 문제인지에 대한 이야기도 전혀 없다.
캔디 씨의 언행은 '정치적 발언'이 아니라, '분풀이'를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되었다.

만약 캔디 고 씨의 말처럼 고승덕과 본인 사이에 아무런 교류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라면, 캔디 고 씨는 서울 시민보다도 고승덕에 대해서 모른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나는 캔디 고 씨가 이번 선거에서 서울 시민에게 올바른 선택을 위한 정보를 제공했다기보다는, 고승덕 개인에 대한 분노를 통해 선거를 흔들려고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방식은 결과값이 어느 쪽에 유리하든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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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덕의 딸 고캔디 씨가 고승덕을 “교육감이란 직책에 자격에 없다”고 했다. “피붙이도 가르칠 뜻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한 도시의 교육 지도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라고도 했다. 나는 이러한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모든 교사는 자신의 생물학적 자식을 잘 키우는 사람이어야 하는가? ‘아이를 버린 것은 너무하다’, ‘교육 일을 할 자격이 없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자기 가족도 못 돌보는 사람이 무슨 교육감이냐’ 라는 식의 반응은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좋은 행정가는 도덕적으로 올바른 사람이어야 하는가? 도덕성이 공약의 진실성을 담보하는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도덕성은 그 사람의 일부분을 이야기해주기는 한다. 하지만 좋은 행정가의 기준에서 도덕성은 어느 정도 중요한 것일까를 생각해보자. 이 질문은 ‘도덕성이 밥 먹여 주냐?’는 질문이 아니다. 행정가를 뽑는 선거에서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성을 묻고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나는 좋은 행정가를 찾는 기준으로 정책의 가치, 실현가능성, 행정역량 등이 도덕성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당장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유리하다는 이유로, 특정 후보에 대해서 (다른 것도 아니고)사적 도덕성을 이슈로 삼아 네거티브 전략을 펼치고 그것이 효과가 있다면, 그 뒤로도 선거에서 특정 후보를 공격하기 위해 사적 도덕성의 흠결을 찾아내려는 네거티브 전략이 계속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어디 있는가?

도덕성을 공격하는 것은 특히 보수 쪽에 유리한 방식이다. “봐, 도덕적이라는 진보 후보도 까발려 보면 별 수 없지” 같은 논리로 흐르기 쉽다. 개인적 흠결을 찾아내 네거티브를 펼치는 것이 용인된다면 진보에게 유익할까? 과연 서울시의 교육 정책을 총괄하는 교육감 선거가 “아이를 잘 키운 조희연 VS 아이를 버린 고승덕” 같은 구도로 흘러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가? 내 아이가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표를 얻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하는가? 교육은 부모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그동안 고승덕이 ‘내 아이처럼 키우겠다’는 식의 정치적 수사를 동원하기는 했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 아이도 못 키워본 사람에게 내 아이 교육을 어떻게 맡기냐”는 식의 반응을 기대하며 이 스캔들을 이용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가족처럼 아이를 교육시키는 교육감’이라는 지향점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아이조차 버린 사람입니다” 라고 정치적 수사를 거꾸로 이용하는 것 또한 지양해야 한다.
파괴할 것은 고승덕 개인의 도덕성이 아니라 고승덕의 가치이다. 당장 고승덕을 파괴할 수 있다고 해서 개인을 공격하는 손쉬운 방식을 택한다면, 결국 이번 교육감 선거는 ‘더 도덕적이고 내 아이를 좋은 대학 보낼 수 있게 해줄 교육감’으로 조희연 또는 문용린을 찍는 선거가 될 뿐이다. 그것이 조희연의 가치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아닐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떠나서, 이 스캔들이 실제로 조희연에게 유리한 것은 맞는지를 따져볼 필요도 있다. ‘정치공학’적으로 말이다. 조희연을 지지하는 나로서는 이 이슈가 오히려 조희연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더욱 고승덕의 스캔들을 반복해서 언급하고 조롱하는 것 자체가 조희연 지지자들에게 별로 좋은 방식이 아니라고 같은 조희연 지지자들에게 호소하고 싶다. 나는 이번 스캔들로 고승덕의 지지율이 떨어진다면 고승덕 지지자들이 조희연으로 옮겨가기보다는 문용린으로 옮겨가며 ‘보수 단일화’ 효과를 불러올 뿐이라고 본다. 조희연 지지자로서 더 ‘정치공학’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나는 이 스캔들이 본격적으로 이슈화되지 않는 선에서 고승덕 지지자들의 일부가 우왕좌왕하다가 지지자가 공중분해 또는 분산되는 것이 지금 상황에서 최선이라고 본다. 고승덕의 지지율은 현재 조희연보다 많이 앞서 있다. 조희연의 지지율이 상승세이기는 하지만, 고승덕과 문용린 중에 한쪽이 타격을 받고 보수 후보의 지지율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게 된다면 조희연의 승리는 오히려 더 멀어질 수 있다.
사실 고승덕은 선거에 나갈 수 없을 만큼 약점이 많고 취약한 후보라는 점에서 이명박과 닮아 있다. 인지도가 높고 어떤 시대적 욕망을 사람들이 투영한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고승덕에게 BBK는 고캔디의 글일 것이다. 그리고 BBK는 상황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박근혜의 국정원 직원 사건은 어떠했는가? 보수층 결집이라는 역풍을 맞았다.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이 지난 지금은 ‘사건’들만 남았다.
‘가치’가 더 많이 논의되기보다, 일개 ‘사건’이 선거의 주인공이 되었다.


당장 조희연 후보에게 유리할 수 있다는 이유로 상대편 후보의 스캔들을 이용할 것인가? 부동층은 아직도 40%가량이다. ‘고승덕’을 실시간 검색어에 올릴 것이 아니라, 조희연 후보를, 조희연 후보가 지향하는 ‘가치’를 알리는 것에 집중해야 할 시기다. “고승덕은 생각하지 마”가 내가 할 수 있는 고승덕에 관한 마지막 글이 되기를 바란다. 이제는 조희연에 대해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할 생각이다. 내 생각에, 선거는 더 불리해졌고 조희연의 가치는 더 적게 이야기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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